이주완의 IT산업 나우
전기차 시대 주인공은 완성차기업? 배터리기업?
2019년 한 해 동안 전기자동차를 가장 많이 판매한 브랜드는 어디일까요? 약 37만대의 전기자동차를 판매한 테슬라입니다. 그럼 2위는 누구일까요? 바로 20만대를 판매한 중국의 BYD입니다. 우리에게 친숙한 브랜드는 그 다음에야 등장합니다. BMW가 14만대를 팔아 3위에 오른 거죠. 전기자동차도 분명히 자동차인데 왜 역사 깊은 업체들이 신생 업체들에 밀리고 있을까요?
🚗전기자동차엔 엔진이 없다: 연료비가 절약된다. 대기를 오염시키는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다. 조용하다. 이 정도가 일반인들이 이해하고 있는 전기자동차입니다. 그런데, 전기자동차의 외형은 가솔린이나 디젤 엔진을 탑재한 내연기관과 별 다를 바가 없어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전기자동차의 등장이 자동차 업계에 큰 파장을 가져온 진정한 이유는 연료와 배출가스의 차이가 아닙니다.
큰 차이는 바로 엔진룸이 없다는 것입니다. 1770년 최초의 증기 엔진 자동차가 등장한 이후 완성차 업체들은 250년 동안 엔진을 만드는 노하우를 축적해 왔습니다. 좋은 엔진을 만들어서 주행 성능과 연비를 향상시키는 능력은 완성차 업체들의 핵심 경쟁력이었습니다.
🤕엔진 만드는 노하우가 무용지물이 된다: 자동차의 엔진룸이 사라진다는 건 이 노하우가 무용지물이 된다는 뜻입니다. 전기자동차의 보닛을 열어 보면 내연기관 자동차에 들어가던 엔진, 플러그, 냉각수, 팬, 벨트, 모터 등 복잡한 구조가 사라지고 텅 빈 공간이 트렁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향후 자동차의 경쟁력은 엔진과 차체가 아닌 배터리 기술에 달려 있으므로 더 이상 완성차 업체들이 주도권을 행사할 수 없어 자동차산업의 지각변동이 불가피하게 된 상황입니다.
🤝완성차 업체들과 배터리 업체들의 밀월 시대: 전기자동차 시장이 빠르게 확대됨에 따라 완성차 업체들은 안정적인 배터리 공급처를 확보하는 게 중요해졌습니다. 완성차 업체들은 일정 물량 이상의 전기차를 생산, 판매하지 못하면 EU 등 주요 시장에 제품을 판매할 수 없어 이들에게 배터리 업체는 부품사 이상의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특히, 대용량, 고출력, 긴 수명의 전기차 배터리를 일정 규모 이상 생산할 수 있는 이차전지 업체가 한정돼 있는데요.
공개시장에서 전기차용 배터리를 구입할 경우 공급 부족 현상이 발생하면 배터리를 구매할 수 없게 될 겁니다. 따라서 완성차 업체들은 충분한 물량의 배터리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이차전지 업체들과 제휴를 추진하거나 더 나아가 합작사를 설립하는 추세입니다. LG화학은 중국의 지리자동차와 합작사를 설립해 10GWh 규모의 공장을 건설할 예정이며 스웨덴 노스볼트는 폭스바겐과 함께 24GWh 공장 건설을 발표했습니다. 테슬라는 배터리를 직접 생산하겠다고 했으며 CATL과 차세대 배터리도 공동 개발하고 있지요. 한편, 테슬라의 자급자족 계획에 위기감을 느낀 파나소닉도 도요타와 합작사를 설립했습니다.
🥊완성차 업체들과 배터리 업체들의 헤게모니 쟁탈전: 엔진이 필요 없는 전기자동차의 등장으로 전통적인 완성차 업체들의 강력한 경쟁력이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는 이미 현실이 됐습니다. 지난해 전기자동차 판매 1, 2위를 차지한 테슬라와 BYD는 사실상 IT 기업들로서 자동차용 엔진을 제조한 적이 없습니다. BYD는 원래 배터리 회사이며 테슬라는 창업 초기부터 전기차와 배터리만을 제조해 왔습니다. 배터리 기업이 차체를 생산하는 것이 완성차 업체가 배터리를 생산하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수월하기 때문에 향후에도 전기차를 제조하는 배터리 기업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금은 이해관계가 맞아 밀월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앞으로 전기차 시장을 놓고 완성차 업체들과 배터리 업체들은 경쟁 관계가 될 수 있다는 얘기지요. 최근 완성차 업체들과 배터리 업체들이 합작사를 설립하고 강력한 제휴 관계를 맺는 것에는 상대방의 기술을 습득해 독자노선을 걷겠다는 의중이 숨겨져 있다고 판단됩니다. 배터리까지 직접 생산하려는 완성차 업체들과 전기차를 직접 제조하려는 배터리 업체들은 각기 야망을 감추고 동상이몽을 하며 치열한 수 싸움을 벌일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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