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의 회사는 정말 혁신하고 있습니까?

이동우 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의 [10분 독서 나우]가 매주 한 번씩 발행됩니다. 전문 북 큐레이터인 이 교수가 직접 직장인 분들이 읽으면 좋은 책을 엄선하고 핵심 내용을 요약해 드립니다.

파괴적 혁신 이론이 소개된 지 벌써 20년이 넘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론 혁신하지 않으면서 혁신한다고 믿는 기업들이 많습니다. 진짜 혁신은 어떤 건지 사례를 통해 살펴봤습니다. 기술 잡지 ‘와이어드’의 편집장이었던 데이비드 로완의 책 <디스럽터>입니다. (본 리뷰는 어떠한 상업적 지원도 받지 않고 작성됩니다)

이동우의 10분 독서 나우

여러분의 회사는 정말 혁신하고 있습니까?

이 책의 저자는 기술 잡지인 <와이어드>의 영국판에서 8년 동안 편집장으로 일했습니다. 그러면서 산업 전반의 전설적인 기업의 C레벨 임원들과 자주 만났다고 하는데요. 저자가 만났던 그들은 하나 같이 자신은 제대로 이해하고 있고, 혁신하고 있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실질적인 성과를 내기엔 지나치게 초기이긴 하지만, 모든 요소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라고요. 하지만 이 책은 큰 조직에서 혁신이라고 추앙 받고 있는 것은 사실 ‘혁신 연극’인 경우가 아주 흔하다고 말합니다.

이 ‘혁신 연극’이라는 말에 주목해 볼 만합니다. 시대가 급변하는 것에 조급함을 느껴 마음의 위안을 얻고자 정해진 규칙대로 혹은 PR부서에서 하라는 대로 추진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일반적으로 기업의 혁신은 조직과 고객들에게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기 위한 신선한 접근 정도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어느 때보다도 더 기업 혁신을 절박하게 추구하는 시대입니다. S&P 500 기업의 평균수명은 1958년에는 61년이었지만, 2012년에는 18년으로 줄어들었습니다.  혁신하지 못한 기업은 금방 도태된다 는 뜻이겠죠. 그래서 이 책은 탁상공론이 아닌 실무적인 혁신의 사례를 들며 가짜 혁신이 아닌 진짜 혁신을 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합니다.

핀란드 기업 OP

핀란드에서 가장 큰 금융 그룹 OP는 1902년 설립되었습니다. 그런데 2016년 OP의 이사회는 향후 5년 안에 OP가 디지털 은행으로 탈바꿈하도록 20억유로를 투자하기로 결정합니다. 최근 비즈니스의 모든 환경이 바뀌었다고 인식했기 때문인데요. 인터넷과 스마트폰, P2P대출, 블록체인, 인공지능, 자율주행차 기술이 등장했고, 이제는 100년 된 사업모델이 위협 당하고 있다고 OP 이사회는 느꼈습니다. 보통 이런 경우에는 스마트폰 앱을 출시한 것만으로 고객의 새로운 기대에 대응했다며 혁신을 완료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수익성이 높으면서도 변화하는 고객 요구에 대응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새로운 사업 분야를 개척하겠다고 정했습니다. 결국 이들은 급진적인 생존모드로 진입합니다.

금융 그룹 OP는 기존에 은행이 하지 않던 일들을 벌였습니다. OP 매출의 10%는 사람들이 자동차를 사고 보험에 가입하도록 돕는 데서 나온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OP는 아예 전기차 충전소 인프라를 구축하고, 보유 자동차의 효율성을 높이는 통합 이동성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OP는 소매업에도 관심을 가졌습니다. 새로운 결제∙출납 서비스를 개발해 재고관리, 고객관계관리, 물류 관련 소프트웨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OP는 또 주택보험과 주택담보대출, 부동산 중개회사에도 진출했고, 서비스로 만든 주택 사업도 실시하고 있습니다. 은행은 부동산 투자기금으로 아파트를 구입해 고객이 시세보다 약간 높은 렌트비를 지불하도록 만든 것입니다. 또 코워킹 스페이스를 만들고 보험회사도 인수하며  사업 영역을 계속 넓혀가고 있습니다. 

에스토니아

세계 최초로 국경 없는 국가를 만들고 있는 에스토니아가 있습니다. 에스토니아는 구 소비에트연방에 속해 있었던 나라입니다. 영토는 대략 스위스와 비슷한 크기인데요. 북유럽 국가로 인구는 130만명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에스토니아의 1인당 GDP는 2010년엔 2만1000달러 정도였지만, 작년엔 3만5000달러로 훌쩍 성장했습니다.

배경엔 에스토니아의 새로운 분석이 있었습니다. 조만간 각 나라들이 서비스의 질과 범위를 통해 글로벌 시민의 애국심을 놓고 경쟁을 벌일 것이라는 예측입니다. 즉 사업, 의료, 디지털 교육, 금융 등  개인이 필요에 따라 거주할 나라를 선택하게 되는 순간이 올 것이라고 예측 한 것입니다. 이 말은 에스토니아가 글로벌 국민을 유치하기 위해 새로운 혁신을 하겠다고 선언한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에스토니아가 찾아낸 답은 온라인 신청으로 모든 세계인을 에스토니아의 디지털 주민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등록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100유로의 수수료와 여권 스캔본, 사진만 등록하면 그걸로 끝입니다. 에스토니아를 실제로 방문할 필요 없이 20분이면 모든 절차가 끝납니다. 그리고 몇 주 후에 거주국 대사관이나 공인된 수령 장소에 가서 지문을 등록하고 디지털 신분증, 국가 시스템에 접속 가능한 신분증 판독기, 두 자릿수 암호만 받으면 됩니다.  18세 이상이고 전과가 없는 사람이면 누구나 에스토니아에 회사를 세울 수 있고, 유럽 내 시장에서 전 세계와 거래할 수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결과는 어떨까요? 2018년 10월까지 4만 5천 명이 에스토니아 전자시민으로 등록했습니다. 주로 핀란드, 러시아, 우크라이나, 독일, 미국 사람들입니다. 에스토니아는 1000만명의 전자시민이 등록되면 넷플릭스처럼 가입비를 거두고 소득세를 완전히 폐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국가 경영을 이렇게 한다는 것 자체가 혁신일 것입니다. 그리고 추가적인 혁신도 뒤따르는 것으로 보입니다. 에스토니아는 인구도 적고 부유하지 않은 나라였지만, 차량공유기업 택시파이 같은  유니콘 기업(기업가치가 10억달러 이상인 스타트업)을 네 개나 만들어냈습니다.  인구 대비로 보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준입니다. 지금은 마이크로소프트에 인수된 스카이프, 도박 소프트웨어 기업 플레이테크 같은 기업들이 모두 에스토니아에서 생겨났습니다.

야라 인터내셔널(Yara International)

이 회사는 비료 회사입니다. 혁신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그다지 새로운 것이 없어보이는 회사입니다. 그런데, 이 회사는 해마다 트럭 4만대 분량을 공장에서 항구까지 운반하는 데 애를 먹고 있습니다. 수송할 기사를 구하는 데 애먹을 뿐만 아니라 육로 수송은 생각보다 비용이 높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 회사는 자율항해 배터리 동력 화물선을 개발하는 데 4000만달러를 투자하기로 했습니다. CEO는 이 사안을 보고 받고 불과 2분 만에 결정을 내렸다고 합니다. 올해 상용화될 예정인 선박의 명칭은 ‘야라 베르켈란’입니다. 노르웨이 물리학자 크리스티안 베르켈란의 이름을 딴 것인데요. 자율항해 선박은 일반 배에 비해 3배 더 비싸기는 합니다.

하지만 임금과 연료를 절약할 수 있기 때문에 비용은 상쇄할 수 있을 거라고 예상됩니다. 상용화에 성공한다면  비료 회사를 뛰어넘는 자율항해 선박 기업으로 포지셔닝할지도 모릅니다.  이 회사가 자율항해 선박 플랫폼이나 바다의 테슬라가 되지 말라는 법도 없잖습니까.

정리하자면
많은 기업들이 혁신을 이야기하고 그 혁신 과정을 일정한 틀에 끼워넣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책은 이런 모든 것은 효과가 없다고 얘기합니다. 어떤 혁신도 책상 위에서는 일어날 수 없습니다. 혁신은 그야말로 운 좋게 발견하는 것입니다. 전혀 상관없는 곳에서 나온 영향력이나 아이디어를 완전히 받아들일 때 일어나는 것이 혁신이라는 것입니다. 이 책은 기존의 뻔한 혁신 사례가 아닌 새로운 기업들의 혁신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는 의미로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좋은 책입니다. 다만, 이 책은 글의 전개방식이 기존의 경제경영서라기보다는 칼럼 형식에 가깝습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라면 처음부터 적응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저자가 <와이어드> 편집장이었기 때문에 이런 글 전개 방식을 취한 듯합니다.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 교수입니다. ‘이동우의 북박스클럽‘을 운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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