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돈 안 도는 한국경제, 어떻게 살릴까

‘리멤버 나우’는 국내 최고의 경제 전문가들이 매일 아침 최신 경제 이슈에 대해 설명드리는 콘텐츠 레터입니다. 최근 합류한 거시경제와 IT 트렌드를 다루는 필진이 궁금하시다면, 클릭하세요.

지금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중앙은행은 금리를 낮추고, 자산을 매입하고 있습니다. 시장에 돈을 풀어 경기를 살리기 위해서인데요. 이렇게 돈을 풀어도 시장에는 돈이 돌지 않고 있습니다. 이럴 땐 어떡해야 경기를 살릴 수 있을까요. 그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10월 8일 ‘리멤버 나우’입니다.

이진우의 익스플레인 나우

돈 안 도는 한국경제, 어떻게 살릴까

돈이 돌기만 하는 것으로도 경제가 얼마나 활력을 가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돈이 돌자, 빚이 사라졌다

미국의 어떤 시골 마을에 여행객이 찾아왔습니다. 그 마을에서 하루 묵기로 하고 호텔을 찾았습니다. 그 여행객은 하룻밤에 10만원짜리 방을 달라고 하고 방값을 선불로 내고 짐을 들고 방으로 올라갔습니다.

방값 10만원을 받은 호텔 주인은 그 돈을 받자마자 정육점으로 가서 그동안 고기를 사다 쓰고 미처 주지 못했던 외상값 10만원을 갚았습니다. 정육점 주인은 옆집 철물점에서 식칼을 사다 쓰고 아직 갚지 않은 외상값 10만원을 갚았죠.

철물점 사장은 그렇게 생긴 10만원으로 아들에게 용돈으로 쓰라고 10만원을 줬고요. 그 철물점집 아들은 그 용돈을 받자마자 호텔로 달려가서 지난달에 여자친구와 호텔에 묵고 나서 못 치른 방값 10만원을 갚았습니다. 그런데 그때 아까 그 호텔에 체크인했던 여행객이 짐을 들고 내려오더니 방이 냄새가 나고 맘에 들지 않는다고 방값을 환불해달라고 합니다. 호텔 주인은 철물점 아들이 갖고 온 10만원을 다시 그 여행객에게 돌려줍니다. 이 모든 일이 여행객이 호텔 문을 열고 들어온 지 20분 사이에 생긴 일입니다.

여행객은 자기가 낸 방값을 다시 돌려받은 것뿐이지만, 그 마을의 호텔 주인과 정육점 사장, 철물점 주인, 철물점 주인의 아들은 그동안 쌓였던 부채를 모두 갚았습니다. 돈을 쓰지 않고 단순히 잠시 돌리기만 해도 경제가 살아난다는 걸 보여줍니다. 만약 여행객이 방값을 선불로 내지 않고 그냥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왔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상황인데,  그 20분 동안 돈이 돌았다는 이유로 대단히 큰 변화가 생긴 겁니다. 

호황과 불황 가르는 ‘화폐유통속도’

이렇게 돈이 도는 건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중요한 정도가 아니라 경기 그 자체이기도 합니다. 불경기냐 아니냐를 딱 한 가지 기준으로 가르라고 하면 그 지표는 돈이 활발하게 도는지 아니면 조용히 잠자고 있는지 여부입니다.

사실 시중에 풀려있는 화폐의 총량(통화량)은 경기가 좋을 때나 나쁠 때나 큰 차이가 없습니다. 경기가 좋을 때는 통화량이 빨리 늘어나고, 경기가 나쁠 때는 잘 늘어나지 않는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경기가 아주 좋던 5년 전보다 경기가 아주 나쁜 지금 시중에 풀린 돈의 양이 더 많을 수도 있는 겁니다.

시중에 돈이 많이 풀려있지만 그 돈이 돌지 않고 어느 누구의 통장이나 지갑 안에 머물러 있으면 그 돈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똑같습니다. 똑같은 통화량을 갖고도 어떤 나라는 경제활동이 매우 활발하고 어떤 나라는 아무 일도 생기지 않습니다.  그 차이는 돈이 얼마나 빨리 도느냐 하는 ‘화폐유통속도’의 차이에서 나옵니다. 

한국 경제, 돈이 안 돈다

화폐유통속도는 우리나라에서 1년 동안 발생한 경제활동의 총량인 GDP를 우리나라에 풀려있는 돈의 총량인 통화량으로 나눈 수치입니다. “우리나라에 풀려 있는 돈을 기반으로 경제활동을 얼마나 활발하게 했느냐”를 측정하는 지표인데 지난 2분기에는 0.69를 기록했습니다. 이 수치는 2000년대 초반에는 0.95였습니다.

돈을 풀어도 금리를 낮춰도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다는 말은  돈을 풀고 금리를 낮추는 바람에 통화량은 늘었지만 그 돈이 돌지 않아서 통화의 유통속도는 늘어나지 않는다 는 말과 같습니다. 좀 전에 예로 든 시골 마을이 경제활동이 활발하지 않다면 여행객이 낸 10만원의 방값은 그냥 호텔 주인의 주머니에서 한달이고 두달이고 잠자고 있을 겁니다. 정육점도, 철물점도 외상값을 받지 못합니다.

그럼 돈이 잘 돌지 않는 불경기는 어떻게 치료해야 할까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그 시골 마을에 낯선 여행객이 찾아와서 10만원을 쓰는 바람에 그 돈을 모티브로 온 마을의 경제활동이 활발해졌듯이 실물경제에서도 그 여행객 같은 <돈을 쓰는 누군가>를 만들어내면 됩니다.  현대 경제학에서는 정부가 그 일을 해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정부가 재정적자를 무릅쓰고 이런 저런 정부 사업을 벌이는 건 인위적으로 여행객을 만드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혁신적인 상품은 소비를 부른다

그러나 여행객이 놓고 간 10만원이 그냥 호텔 주인의 주머니에 남아있으면, 정육점 주인의 주머니에 남아있으면 더 이상 돈이 돌지 못합니다. 돈이 잘 돌기 위해선 돈을 가진 사람들이 그 돈을 쓰지 않고는 못 배길 만한, <돈을 쓸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 시골마을에서는 갚아야 할 외상값들이 있으니 사람들이 주저없이 어디론가 달려 가서 돈을 썼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그런 일이 벌어지려면 주변에 구매하고 싶은 제품이나 서비스들이 넘쳐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기껏 움직이기 시작한 돈은 호주머니 안에 머물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그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경제활동의 주체인 개인과 기업들이 그런 상품을 열심히 개발하고 만들어내야 가능합니다.  선진국들의 경제성장률이 개발도상국보다 낮은 이유는 사람들이 웬만한 상품은 이미 소비하고 있거나 소비한 적이 있어서 그 높아진 눈높이를 극복하고 돈을 추가로 쓰도록 만드는 일이 대단히 어렵기 때문입니다.

불경기의 모든 경제정책은 사실 그걸(돈이 활발하게 돌게 하는) 목표로 만들어집니다. 대기업들의 기를 살려주고 이자율을 낮춰주고 규제를 완화해줘야 하는 이유는 사람들을 유혹할 만한 새로운 상품들을 많이 만들어내도록 하기 위해서이고, 서민들의 주머니를 채워주는 소득주도성장이 중요한 이유는 그렇게 만들어낸 상품들을 기꺼이 구매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대기업을 규제해야 하는 이유는 그 기업들이 독점적인 지위를 누리게 되면 경쟁 제품들이 시장에 진입하기 어렵고 그러면 사람들을 유혹할 만한 상품이 많이 쏟아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서민들에게 복지수당을 나눠주는 게 나쁜 이유는 자칫하면 그 수당에 의존해서 뭔가 사람들을 유혹할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내는 일을 시작하거나 참여하는 걸 게을리할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중소기업들을 돕는 게 나쁘기도 한 이유는 경쟁력이 없어서 어려워진 그 중소기업이 망하지 않으면 그 기업이 차지한 공장 사무실 인력 등이 다른 용도로 활용되지 못하고 그렇게 되면 매력있고 유혹적인 상품을 생산할 새로운 기업이 나타나기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상황에 꼭 필요한 정책을 펴는 판단력

결국 정부의 정책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그 정책의 기조가 친기업이냐 친서민이냐, 혹은 중소기업 우대냐 아니냐가 아닙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떤 정책을 펴는지가 중요합니다.  지금 경제상황에서 대기업을 규제하는 게 필요한지 아니면 대기업의 규제를 완화하는 게 필요한지,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창업을 늘리기 위해서는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게 필요한 타이밍인지 구조조정을 통해 새로운 중소기업들로 물갈이를 하는 게 좋은지를 결정하는 상황 판단력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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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 브리프

청년 주거정책이 집값을 올린다?

무주택 청년가구의 집세 지원을 위한 정책자금 대출이 꽤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전세금의 90% 한도로 최대 7000만원까지 연 2.6%의 금리로 빌려줍니다. 소득이 없어도 무주택 청년이기만 하면 됩니다. 이런 정책은 청년들의 독립 시도를 더 수월하게 도와줍니다. 그 결과 우리나라의 가구 수가 늘어나고 필요한 주택 수가 늘어납니다.

주택가격을 예측할 때 또는 주택의 필요 공급량을 결정할 때 우리는 수요가 얼마나 늘어날지 추정해야 하는데요. 20세 이상의 성인은 누구나 집을 한 채씩 필요로 합니다. 다만 소득과 집값 조건이 그 욕구를 실현시키지 못하게 막고 있을 뿐입니다(돈만 있으면 중학생만 되어도 따로 나가서 살고 싶은 게 본능입니다).  이렇게 정부가 손쉬운 대출을 제공하면 청년들은 더 행복해지고 집값은 더 올라갑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한 집에서 부모와 살거나 하숙집에 머무를 청년들이 각자의 집을 더 손쉽게 갖게 되고 가구 수와 필요 주택 수가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타다, 불법 된다?

출처: 타다 홈페이지.

<타다>라는 모빌리티 서비스와 택시 사이의 갈등을 정부는 <타다가 보유한 차량 숫자만큼 택시면허를 사들여라>라는 해법으로 풀어가려고 하는 중입니다.

이렇게 되면 타다는 택시 면허를 사들이지 못하면 증차도 할 수 없습니다. 택시 면허가 무제한 매물로 늘 나오는 게 아니니 타다는 그걸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지금 1400대를 굴리고 있는 타다 서비스를 1만대까지 늘리겠다는 게 타다의 목표입니다.

그렇게 되면 택시 사업자들이 다시 타다와 충돌할 게 뻔하기 때문에 정부는 타다를 압박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압박 카드는 <타다의 불법화>입니다. 지금은 11인승 이상 자동차와 기사를 세트로 묶어서 렌트카 손님에게 제공하는 건 합법이라서 타다는 합법 서비스로 인정받고 있습니다만,  정부가 그 법을 바꿔서 불법화하면(예를 들어 6인 이상을 태울 때만 합법이라든가 하는 식이죠) 타다는 그날 이후로 운행이 중단됩니다. 

타다는 정부가 그렇게 할 경우 정부가 법을 사후에 바꿔서 사업을 중단시킨 손해배상을 요구할 것이라고 맞서고 있습니다. 이런 타다의 서비스에 만족하고 지지하는 소비자들이 꽤 많다는 게 정부의 고민입니다.

데일리 체크

사무 자동화 프로그램이 국내에서도 속속 도입되고 있습니다. 단순한 데이터 집계와 엑셀 정리 등은 자동화 프로그램에 맡기는 기업이 늘고 있습니다. 단순한 일은 프로그램이 대신 해줘 업무효율은 올라갑니다. 인공지능 찬양론자인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소프트웨어 봇은 365일 24시간 일할 수 있다. 생산성은 2배 높고, 업무시간은 5배에 달하니 10배의 노동인구 공급 효과를 내고, 여기에 인공지능을 연결하면 25배까지 효율이 올라간다”고 말했습니다. 이 시장은 올해 23억4400만달러(약 2조7700억원)에서 2022년 43억800만달러(약 5조1000억원)로 성장할 전망입니다.

증시의 ‘대기자금’으로 통하는 투자자 예탁금 규모가 1년 5개월 만에 처음 29조원을 넘어섰습니다. 이는 지난달 말에 비해 4조7643억원 폭증한 숫자입니다. 투자자 예탁금은 투자자가 주식을 사기 위해 증권사에 맡겨 놓거나 주식을 판 뒤에 찾지 않은 자금입니다. 예탁금이 늘어난다는 건 그만큼 증시에 유입될 유동성도 많아졌다는 뜻입니다.

경제 평론가입니다. MBC ‘이진우의 손에 잡히는 경제’를 진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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